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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재해와 검은 크리스마스

1957년 겨울, 세계는 유례 없는 비극에 휘말렸습니다.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으며 누구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시작은 오리건 주 톨레도(Toledo)에 위치한 한 대규모 생화학 연구단지였습니다. 공간을 비집듯이, 혹은 찢어버리듯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거대한 검은 구체는 단지에 위치한 중앙 연구동의 일부와 허공, 그리고 숲과 강물을 통째로 밀어버렸지요.

 

예, 그래요! 말 그대로. ‘밀어버렸’습니다. 각자가 위치하고 있던 곳으로부터 단 한 순간만에 내쫓겨난 콘크리트 조각과 나무껍질, 시멘트와 자갈, 고즈넉이 흐르던 강물은 모조리 구의 바깥쪽 방향을 향해 비산했습니다. 이 황당무계한 사건이 비극이 된 이유는, 그렇게 엄청난 속도로 떠밀려 날아간 것들이 연구단지의 다른 시설들까지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엄중하게 다루어지던 독극물과 오염 물질까지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철근마저 부러뜨려 뽑아낼 정도로 강력한 에너지의 갑작스러운 돌출로 인해 수십 겹으로 밀폐되어 있던 화학폐기물 탱크가 폭발했고, 그것들 중 일부는 서쪽과 북쪽으로 수 마일을 날아 야퀴나 강과 캣테일 강에 처박혀 곧장 바다로 흘러들기 시작했습니다. 연쇄적으로 이어진 폭발과 붕괴를 막을 수 있는 자는 단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 미국 땅에 터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의미를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불과 두 주만에 톨레도를 중심으로 한 북서부 해안 전체가 재앙의 땅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해안에서 노닐거나 강물을 마신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질병에 걸렸고, 농작물이며 동물들도 괴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어처구니 없는 재해 앞에서 가장 운이 좋았던 사람들은 구체가 나타난 바로 그 날, 혹은 그 다음의 며칠 안에 죽은 연구원들과 톨레도 시민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최소한 오래 고통스러워할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오염물이 퍼지는 속도는 잔인하리만치 빨랐으며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한순간에 난민이나 다름없어진 오리건 주의 주민들은 인접한 주로 대피했으나 편서풍을 타고 사람의 발보다 빠르게 퍼지는 죽음의 공기는 북아메리카 전체에 크고 작은 병마의 손길을 뻗었습니다. 속수무책의 질환, 피난민들이 동부와 중부로 몰려들면서 생겨나는 갈등과 혼란, 분노한 이들이 일으킨 폭동으로 승리의 땅이었던 미국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멕시코며 캐나다로 밀입국하는 미국인들이 늘어나면서 빚어진 군사적 갈등이 국지적인 전쟁으로 번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단 4년 3개월만에 미국의 인구는 절반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다른 대륙은 어떻게 되었냐고요?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겠어요, 대륙간 교통과 통신은 이미 한참이나 전에 끊겨 버렸는데!)

 

양차 세계대전의 승리, 전쟁터가 되지 않은 국토, 영원할 것만 같았던 미국의 전성기는 그렇듯 허무하게 끝이 났습니다. 우리는 알래스카 준주와 하와이 준주를 사실상 잃었으며 48개 주 정부는 간신히 명목만을 유지할 뿐이었습니다. 옛 시대를 추억하는 노인들은 차라리 유럽의 전쟁터가 나았다고 한탄했고, 젊은이들은 종말론에 빠져드는 가운데, 태어나는 아이들은 병들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죽음의 땅에 그 불길한 검은 구체가 덩그러니 놓인 날을 검은 크리스마스라고, 또 그것이 불러온 모든 파국과 참사를 대재해(The Great Disaster)라고 불렀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마치 그렇게 이름을 지어 놓으면 모든 것이 그저 과거의 일이 되기라도 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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