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렌의 침묵
Das Schweigen der Sirenen
<세계관>
04. 이스트 월사이드
유감스럽게도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최첨단을 달리는 인프라나 고도화된 기술력이 갖추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태하거나 부도덕한 사람들이 어디에나 있다는 뜻이지요. 그에 대해선 아마 이전에 말씀드렸을 겁니다. 열심히 일하는 시민들에게 달라붙는 기생충, 스스로의 무능력을 사회의 탓으로 돌리는 게으름뱅이, 대가 없이 받기만 하려는 좀도둑! 무어라 부르든, 이 퍼시픽 돔에 갈등과 불화를 조장하는 해악들.
그들을 돔 밖으로 쫓아낼 수는 없었습니다. 인도적으로 마지막 기회를 준 것이지요. 결론적으로, 그들 중 일부는 퍼시픽 돔에 합법적으로 귀화하는 데 성공하여 견실한 직업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비록 빈민일지언정……뭐, 얼마나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다 개인의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쨌든 간에, 그게 가능했던 것도 2039년까지의 일입니다. 사이렌이 발명된 2040년 이래, 퍼시픽 돔의 체계 속에서 낙오한 자들은 공통적으로 이스트 월사이드 구역에 모여들었습니다. 이 구역에는 돔 전체의 공기를 순환시키는 거대한 환풍 설비가 위치한 까닭에 소음 문제가 만만찮았거든요. 물론 퍼시픽 돔의 기술력에 힘입어 소음을 획기적인 수준으로 감소시켰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풍 설비와 인접한 이스트 월사이드 구역 어귀에선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실상 버려진 곳이 된 이스트 월사이드 구역에 모여든 사람들은 불법 판자 건물을 올리고 구역을 점거했습니다. 듣자 하니, OS를 설치할 만한 기기가 제대로 구비되어 있지 않은 통에 사이렌조차 그곳까지는 살피지 않는 모양이지요.
그런저런 풍문이 증명하듯, 이스트 월사이드의 삶은 궁핍하고 박복함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스트 월사이드 구역의 거주자들이 그렇게 해서라도 돔에 머무르고자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대부분의 국가공동체들이 지하로 옮겨갔다고 하는 시대니까요. 지상에서 죽어가느니, 사회의 찌꺼기에 불과한 삶일지언정 최소한 이곳에서 생존하는 것이 낫다는 겁니다.
이 불행한 빈민굴에는 크게 네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법이주자>
정식으로 돔에 이주한 다른 시민들과는 달리, 이들은 돔의 출입구가 최초로 열렸을 때 어거지로 끼어들어 온 이들입니다. 정확히는 2031년부터 2039년까지, 약 9년간 말이지요. 당시에는 이스트 월사이드의 거주자 가운데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고 하지만,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추산됩니다.
<폭도>
애석하게도 그들 자신 또한 돔의 안락함에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불법으로 건물을 점거하거나 무고한 시민들을 폭력에 희생시키며 패배자들의 사상을 강령처럼 고수하지요. 사실상 사이렌의 탄생에 가장 크게 일조했다 할 수 있으니,
감사라도 해야 할까요?
그들은 이 돔에 합법적으로 입주했으나, 유감스럽게도 돔에 적응할 만큼의 능력은 가지고 있지 않아 빈민이 되었습니다. 직장과 집을 잃고 빚더미에 올라 이스트 월사이드로 도주하는 이야기는 이제 TV 드라마 시리즈에서조차 나오지 않는 진부한 소재입니다.
<낙오자>
<미등록 아동>
편의상 ‘아동’이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이들 모두가 아동인 것은 아닙니다. 정확히 말해 이들은 2040년 무렵부터 이스트 월사이드에서 태어나 자란 아동 및 청소년들로,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태어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본다면, 그들의 부모가 저지른 과오에 희생당했다고도 볼 수 있겠지요.
최근 퍼시픽 돔의 청소년들 가운데 적잖은 수가 이스트 월사이드에 대한 허무맹랑한 풍문에 선동당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PASS와 사이렌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아이들이 낙오자들의 마수에 물들지 않도록 안전한 사회를 지키고 있습니다.
* 신청서에 기재하게 되어 있는 ‘소속 집단’ 란은 <캐릭터 가이드>에 적힌 명칭을 기준으로 합니다.